난 정말 어쩌다가 번역가가 되었다는 말이 딱 맞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어도 좀 한다고 멋 모르고 시작했다.
마침 당시 넷플릭스 자체 번역 시험인 hermes가 있었기에 시험을 봤고 통과했다.
나름 hermes 고유 번호를 갖고 있고 이 번호가 있어야 다른 에이전시를 통하더라도 넷플릭스 영상 작업을 할 수 있다고 듣긴 했는데 그게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hermes 테스트는 '번역가가 충분해서 닫는다'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닫혀 있지만 솔직히 실패한 프로그램이었다고 들었다;;;)
교재나 문서 번역을 시작으로 넷플릭스 시험을 통과한 이후에는 몇 개의 에이전시를 통해 영상 번역을 하고 있는데
오히려 최근 내 부족함을 느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알 수록 더 보인다는데, 난 내 부족함만 더 보인다.
그래도 안 보이는 것보다 낫지 싶다.
영상번역의 기본도 모르는 나를 채용할 정도로 번역 퀄리티에 관심이 없는 대형 회사부터 시작해서
요즘은 진짜 영상 업계의 삼성이나 구글 급의 회사 일을 하고 있는데
역시 돈을 많이 주는 만큼 최고의 퀄리티를 원하기 때문에
번역보다 자체 감수에 더 시간을 많이 들인다.
내 (현재) 작업 단계는 이러하다.
1. 번역 - 말 그대로 그냥 번역. 영어로 된 템플릿이 있기 때문에 그냥 보고 작업하고 헷갈리면 들어본다.
2. 영상을 보며 1차 감수 - 처음부터 쭉 보면서 고쳐나간다.
* 호칭 통일 / 일관된 존댓말과 반말 등
3. 맞춤법 검사기로 확인 (speller.cs.pusan.ac.kr/) 국립국어원 맞춤법 검사기로 본다.
여기서부터는 번역만 분리해서 볼 수 있게 구글 시트에 붙여 넣고 확인한다.
셀 넓이 조정을 하면 글자 수가 넘치는 지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굳이 구글 시트에 붙여넣는 이유는 마지막에 나옴.
4. 구글 시트에 넣은 번역을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2차 감수)
여기서는 한 개 이상의 셀에 이어지는 자막의 흐름과 어투를 확인한다.
* 마켓에 갔어 / 거기서 친구를 만났어 / 인사를 했어 이렇게 계속 똑같이 끝나는 것보다 ->
마켓에 갔는데 / 거기서 친구를 만난 거야 / 인사를 했지 이런 식으로 변화를 주는 게 더 쉽게 읽힘
5. 맞춤법 검사기에 안 잡히는 맞춤법 확인. (주로 '보', '봐', '봤', '했' 등을 검색해서 잡아낸다.)
* 해보겠다 > 해 보겠다 // 만들어보자 > 만들어 보자
6. 습관처럼 쓰지만 지양하는 표현 대체하기. ('적', '것' 검색 후 최대한 대체한다.)
(수정 사항은 그때 그때 영상 파일에 업데이트한다)
7. 3차 감수 - 지겹지만 영상으로 다시 본다. - 가능하면 6번 작업 후 조금 시간을 두고 새로운 마음으로 보는 게 좋음.
8. KNP (Key Name Place: 주요 이름이나 장소를 통일할 수 있게 모아둔 파일)를 대조하고 필요한 업데이트를 한다.
9. 기도하는 마음으로 전송 버튼을 누른다.
10. 후에 감수 파일을 받게 되면 (받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음) 번역을 따와서 이전에 기록해 둔 구글 시트의 옆 줄에 붙여 넣는다. 내 번역과 대조해서 어느 부분을 수정했는지 확인하고 '배운다'.
실제로 번역가라는 직업을 '유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단계는 10번이다.
작든 크든 수정한 부분을 보면 참으로 마음이... 아프지만... (;ㅁ;) 그래도 안 받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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